흉할흉

그는 꽃병을 길러서 아내로 삼았다

꽃병은 너무 고요해서 감히 말을 붙일 수조차 없었다

그는 말했다 집에 가만히 있으라
내가 돌아올 때마다 입꼬리를 올리라

그는 벙어리가 된 꽃병 속에 몸을 ��기는 걸 즐겼다
꽃병에게선 지독한 냄새가 났다

집에 들어간 검침원이 말했다 뭔가 섬뜩한 느낌
수천 개의 눈동자가 숨어서 쳐다보는 느낌
빈 부엌에서 갑자기 수도꼭지가 돌아가고 물이 나오는 느낌

꽃병은 그집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
그저 썩은 꽃이나 입에 물고 있을 뿐
창문이며 찬장이며 컵이며 밤새도록 달그락거리게 할 뿐
가끔 탁자에서 튀어 올라 제 머리를 산산조각 내볼 뿐
늘 같은 시각 같은 공중에 직선으로 누워 어디든 재빠르게 몸을 날릴 수 있을 뿐
침대 위에 머리칼을 늘어뜨리고 몇 분간 떠 있을 수 있을 뿐

그러나 그의 눈동자를 오래 들여다보면 그곳에서
꾸물꾸물 기어 나오는 벙어리 노숙 미친 여자가 있었다

그는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 수줍은 사람이라는 평판

그가 죽자 꽃병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밤중에 머리를 감은 일
그가 죽자 꽃병이 두번째 한 일은 거울을 오래 들여다 본 일

그가 죽자 꽃병이 아침마다 한 일은 얼굴이 송곳에 찔린 사람처럼 소리를 지른 일
새벽이면 지붕에 올라가서 봉화를 올리듯 세숫대야를 두드린 일

소음 신고를 받은 경찰관이 와 물었다
여기 몇 년째 살고 계십니까?
여기 안 살아요
그냥 집을 봐주고 있는 거예요
꽃병 물 갈아주고
우편물 받아주고
그림자 닦아주고
아기도 낳아주고
꽃병이 처음으로 말했다
Notes:

Read the English-language version, "H is for Hideous."

Kim Hyesoon, "H is for Hideous" from Phantom Pain Wings. Copyright © 2017 by Kim Hyesoon.  Reprinted by permission of Moonji Publishing Co., Ltd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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